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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 마태복음 9장, 누가복음 7장 · 13분

죄인의 친구가 되시고, 믿음을 보아 주시는 분

오늘 읽을 본문은 마태복음 9장, 누가복음 7장입니다. 성경을 펴기 전에, 잠깐 이 글로 마음을 준비해 보세요.

배경

마태복음 9장은 8장에서 시작된 '왕의 권세' 이야기의 정점입니다. 폭풍을 잠재우시고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이 이제는 질병을 넘어 죄 자체를 다루십니다. 중풍병자를 향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 9:2) 말씀하시자 서기관들은 속으로 신성모독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병자를 일으키심으로 자신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증명하십니다. 죄를 용서할 권세가 있는 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곧이어 예수님은 세리 마태를 부르시고, 그의 집에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못마땅해하자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세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2-13). 같은 흐름에서 금식 논쟁이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신랑에 비유하시며, 지금은 슬픔의 때가 아니라 잔치의 때라고 하십니다(마 9:15). 낡은 틀에 새 시대를 욱여넣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9장 후반부에는 믿음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죽어가는 딸을 위해 예수님께 무릎 꿇고,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으리라 믿습니다. 두 맹인은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마 9:27) 외치며 따라옵니다. 형태는 다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 자신에게는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께로 향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7장은 산상 설교 직후, 그 가르침이 실제로 어떻게 사람들에게 닿는지를 보여줍니다. 백부장은 유대인이 아닌데도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신뢰하며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눅 7:7) 청합니다. 예수님은 이를 보고 놀라시며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눅 7:9) 하십니다. 곧이어 나인 성에서는 정반대의 장면이 펼쳐집니다. 아들을 잃은 과부는 예수님께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는데, 예수님이 먼저 다가가 "울지 말라" 하시고 죽은 아들을 살리십니다(눅 7:13-15). 한쪽은 믿음으로 구한 은혜, 다른 한쪽은 요청 없이 찾아온 은혜 — 두 길 모두 결국 하나님의 긍휼로 모입니다.

뒤이어 옥에 갇힌 침례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 묻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눅 7:19). 로마를 물리칠 강한 메시아를 기대했던 요한에게, 예수님은 자신이 행하고 계신 일 — 맹인이 보고 못 걷는 자가 걸으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일 — 로 답하십니다(눅 7:22). 그리고 장의 마지막은 죄 많은 한 여인의 이야기로 끝맺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죄인으로 소문난 여인이 들어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향유를 붓습니다. 시몬은 속으로 못마땅해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7).

이렇게 읽어 보세요

오늘 본문 전체에서 눈여겨볼 것은 예수님이 누구에게 응답하시는가입니다. 세리, 이방인 백부장, 혈루증 앓는 여인, 죽은 자의 어머니, 죄인으로 소문난 여인 — 당시 사회의 중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들 중 누구도 자격으로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았습니다. 가진 것은 오직 자신의 결핍을 아는 것뿐이었습니다.

믿음의 모양도 다양하다는 것을 보게 될 거예요. 백부장은 멀리서도 예수님의 말씀이면 충분하다고 믿었고, 혈루증 여인은 옷자락만 만져도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나인 성 과부는 아무것도 구하지조차 않았는데 예수님이 먼저 다가가셨습니다. 믿음이 있어야만 은혜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예수님의 긍휼이 우리의 준비된 정도보다 크다는 것을 함께 보게 됩니다.

잠깐 짚고 갈게요.

누가복음 7장 마지막의 여인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7). 이 말씀을 거꾸로 읽기 쉽습니다. "많이 사랑하면 많이 용서받는다"고요. 하지만 본문의 순서는 그 반대입니다. 여인은 이미 용서를 받았고, 그 용서의 크기를 깨달았기에 눈물로 반응한 것입니다. 사랑은 용서의 조건이 아니라 용서를 향한 반응입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자신의 죄가 적다고 여겼기에 그만큼 적게 감사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용서받아야 할 게 얼마나 많은지를 깊이 알수록, 그 사랑에 대한 우리의 반응도 더 깊어집니다. 작은 죄인 행세를 할수록 오히려 큰 사랑을 놓치게 되는 셈입니다.

마음에 품고 갈 질문

본문을 읽으며 이 질문을 마음에 품어 보세요.

  1. 백부장처럼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라고 믿어 본 적 있나요? 아니면 늘 더 많은 확신이나 증거를 구하게 되나요?

  2. 나에게 용서받은 것이 많다고 느껴진 순간이 있었나요? 그 깨달음이 내 사랑과 감사를 얼마나 깊게 만들었나요?

읽기

이제 마태복음 9장, 누가복음 7장을 천천히 읽으세요. 서두르지 말고, 한 번 읽은 뒤 다시 한 번 더 읽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