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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 마태복음 11장 · 10분

기대를 넘어서신 분, 짐 진 자에게 안식을 주시는 분

오늘 읽을 본문은 마태복음 11장입니다. 성경을 펴기 전에, 잠깐 이 글로 마음을 준비해 보세요.

배경

마태복음 11장에는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봤던 사람들의 반응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반응들 사이에서 예수님이 진짜 누구에게 눈을 향하시는지가 드러납니다.

첫 장면은 감옥에 갇힌 침례 요한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 묻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3). 이것은 배신이나 의심이라기보다, 절망에서 나온 질문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요한은 평생 이 메시아를 가리켰고, 그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았습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오셨는데도 자신은 감옥에 있고, 예수님의 사역은 자신이 선포했던 것과 달랐습니다. 요한이 전파했던 메시아는 타작마당에서 쭉정이를 불로 태우실 심판의 분이었습니다(마 3:12). 그런데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고 죄인과 밥을 드셨습니다.

예수님은 직접 "그렇다" 혹은 "아니다"라고 답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맹인이 보고,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마 11:5). 이것은 이사야가 메시아의 시대를 예언했던 그 장면들입니다(사 35:5-6, 61:1). 그런데 이사야 61장에는 "포로를 자유케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구절만큼은 목록에 넣지 않으십니다. 감옥에 있는 요한은 그 빠진 자리를 눈치챘을 것입니다. "그렇다, 나는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다. 하지만 너는 감옥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마 11:6)라는 말로 마무리하십니다. 어렵고 당혹스러운 소식을 전하면서도 그를 향한 따뜻함을 감추지 않으시는 말씀입니다.

요한이 떠난 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요한을 칭찬하십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마 11:11) — 이보다 더한 칭찬이 없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그러나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라고 하십니다. 요한을 낮추는 말이 아닙니다. 요한은 새 시대의 문이 열리기 직전에 선 사람이었습니다. 예언자로서 최고였지만, 그 문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 문 자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장면은 더욱 날카롭습니다. 예수님은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을 향해 말씀하십니다(마 11:20-24). 이 도시들은 예수님이 가장 많은 기적을 행하신 곳들입니다. 특히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사역 본거지였습니다. 가장 많이 보았지만, 가장 적게 돌아선 곳입니다. 예수님은 소돔조차 자신들처럼 기적을 보았다면 살아남았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더 많이 본 자에게는 더 큰 책임이 따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예수님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을 향해 눈을 돌리십니다.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는 이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처럼 절실한 자들에게 나타내신 것을 아버지께 감사하신 뒤(마 11:25-26),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렇게 읽어 보세요

오늘 본문 전체에서 눈여겨볼 것은 예수님이 어떤 사람에게 응답하시는가입니다. 침례 요한의 질문에 예수님은 비판하지 않으십니다. 이사야 예언을 다시 짚어 주시며, 다른 각도에서 보라고 초대하십니다.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마 11:6) — 이 말은 요한을 향한 경고가 아니라, 기대와 다른 예수님 앞에서도 그분을 신뢰하라는 부드러운 손길입니다. 절망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사람을 예수님은 알아보시고 응답하십니다.

마지막 단락에서 예수님이 누구를 초대하시는지 보게 될 거예요.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가 아니라, 수고하고 짐 진 자입니다(마 11:28). 기적을 보고도 돌아서지 않은 도시들과 달리, 이 초대를 받는 사람은 자신에게 답이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안식"(마 11:29)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누리는 평안입니다. 그것은 더 많이 해야 얻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 나아오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잠깐 짚고 갈게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예수님이 여기서 말씀하시는 "무거운 짐"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이미지였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면 지켜야 할 규정들을 끊임없이 더했습니다. 더 많이 해야 하고, 더 잘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사람들의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예수님은 그 짐의 무게를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다른 것을 내미십니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30). 이것은 더 적은 규정을 주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나에게 배우라"(마 11:29)고 하십니다. 더 많이 행해야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온유하신 그분 곁에 있는 것 자체가 안식이라는 뜻입니다.

마음에 품고 갈 질문

본문을 읽으며 이 질문을 마음에 품어 보세요.

  1. 침례 요한처럼, 기대했던 것과 다른 예수님 앞에서 실망하거나 혼란스러웠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2. 지금 어떤 무거운 짐을 지고 있나요? "내게로 오라"는 초대 앞에서 어떤 마음이 드나요?

읽기

이제 마태복음 11장을 천천히 읽으세요. 서두르지 말고, 한 번 읽은 뒤 다시 한 번 더 읽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