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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 요한복음 2-4장 · 13분

새 시대를 여시고, 우물가에 앉으신 분

오늘 읽을 본문은 요한복음 2-4장입니다. 성경을 펴기 전에, 잠깐 이 글로 마음을 준비해 보세요.

배경

오늘은 요한복음 2-4장을 읽습니다. 예수님의 첫 공개 표적부터 시작해서, 밤중에 찾아온 지식인과의 대화, 사회적으로 소외된 여인과의 만남까지 — 이 세 장이 이어져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어떤 세계를 열어 가시는지를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첫 번째 장면은 가나 혼인 잔치입니다(요 2:1-11). 결혼식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는 위기가 생깁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정결 의식에 쓰던 커다란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게 하시고, 그 물을 포도주로 바꾸십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의 첫 번째 표적입니다(요 2:11). 단순한 기적이 아닙니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강물을 피로 바꾸었는데(출 7:20),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십니다 — 피 대신 기쁨입니다. 정결 의식에 쓰던 그 항아리를 쓰신 것은, 율법과 의식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기쁨의 시대가 열렸음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두 번째 장면은 성전 청결과 니고데모와의 대화입니다(요 2:13-3:21).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을 내쫓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성전을 헐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 2:19) 사람들은 건물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요한은 그것이 예수님의 몸에 대한 말씀이었다고 설명합니다(요 2:21). 이제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라는 선언입니다.

그 직후 밤에 니고데모가 찾아옵니다. 당시 유대 최고 의회 의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요 3:3). 여기서 "다시"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아노텐(ἄνωθεν)은 "위로부터"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두 번 태어나는 게 아니라, 위로부터 — 성령님으로부터 — 새로운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이해가 되지 않아 당황하자, 예수님은 광야에서 모세가 놋뱀을 장대에 매달았던 사건을 끌어오십니다(민 21:8-9). 독사에 물린 이스라엘 사람들이 놋뱀을 바라보면 살았듯,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요 3:14-15). 십자가를 미리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대화의 정점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세 번째 장면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입니다(요 4:1-42).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반드시 사마리아를 통과하셔야 했다"고 기록합니다(요 4:4). 어쩌다 지나간 게 아니라 목적이 있으셨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를 피하고 경멸하던 사이였습니다. 예수님은 한낮에 혼자 물을 길러 나온 여인에게 먼저 말을 거십니다. 그 여인은 남편이 다섯 명이나 있었습니다(요 4:18) — 사회적으로 여러 겹의 벽 뒤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생수"를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한 번 마시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진짜 목마름을 채우는 물입니다(요 4:14). 그리고 예배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요 4:24) 장소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 만남 뒤, 그 여인은 동네로 달려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옵니다(요 4:28-30). 사회적으로 여러 경계 밖에 있던 그 여인이, 동네 사람들을 예수님께 처음 안내하는 사람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왕의 신하 아들 치유 장면입니다(요 4:43-54). 한 왕의 신하가 죽어 가는 아들을 고쳐 달라며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예수님은 "가라, 네 아들이 살 것이다"(요 4:50) 한마디만 하십니다. 신하는 아들을 직접 보지 않고도 그 말씀을 믿고 돌아갑니다. 집에 오니 아들이 살아 있었습니다.

이렇게 읽어 보세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무엇을 새롭게 하시는지 눈여겨보세요. 정결 의식의 물은 기쁨의 포도주로 바뀝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식은 건물에서 예수님 자신으로 바뀝니다. 예배의 장소 논쟁은 영과 진리의 예배로 넘어갑니다. 예수님은 낡고 제한된 것들을 새롭게 여십니다. 그분이 오신 것은 기존 종교를 보완하러 온 게 아니라 새 시대를 여시러 온 것임을 보게 될 거예요.

두 번째로, 예수님이 누구에게 가시는지 눈여겨보세요. 니고데모는 밤에 몰래 찾아온 지식인이었고, 사마리아 여인은 한낮에 혼자 물을 길러 나온 소외된 사람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인정하기 부끄러워 숨어 왔고, 다른 한 사람은 여러 겹의 경계 밖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 모두에게 똑같이 찾아가십니다. 먼저 말을 거십니다. 그분은 찾는 자뿐 아니라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지 못한 사람에게도 먼저 오시는 분임을 보게 될 거예요.

잠깐 짚고 갈게요.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은 "어디서 예배해야 하는가"를 두고 잠깐 이야기합니다(요 4:20). 어디를 향해, 어느 장소에서 예배해야 하느냐 — 이건 예부터 많은 사람이 진지하게 품어 온 물음이에요. 예수님의 답은 장소보다 더 근본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이 찾으신다고요(요 4:23). 예배의 핵심은 방향과 장소가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진짜로 연결되는 것이라는 거예요.

마음에 품고 갈 질문

본문을 읽으며 이 질문들을 마음에 품어 보세요.

  1. 사마리아 여인은 여러 겹의 경계 밖에 있었지만, 예수님이 먼저 찾아가셨습니다. 요즘 당신의 마음속에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아니면 "저런 사람에게까지?"라고 선을 긋고 있는 곳이 있나요?

  2. 니고데모는 이해하려 했지만 머리로 잡히지 않았고, 왕의 신하는 아들을 보지 않고도 말씀만 믿고 돌아갔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이해가 다 되지 않아도 믿어야 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읽기

이제 요한복음 2-4장을 천천히 읽으세요. 서두르지 말고, 한 번 읽은 뒤 다시 한 번 더.